홍익요가연구원에서의 임산부 수련은 하늘이 준 기회였다.
따뜻한 봄 햇살이 창가에 든 오후, 쌔근쌔근 잠들어 있는 딸아이 선우의 얼굴을 보며 지난 열 달 동안의 감동에 잠시 잠겨 본다. 지금은 쉽게 감동이라 말할 수 있지만, 아기를 가진 지난 열 달은 희비가 여러 번 교차하는 실로 힘들고도 긴 나날이었다. 그러나 그 힘든 과정 속에서도 희망을 가지고 조용히 출산일을 기다릴 수 있었던 것은 건강한 아기를 낳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과 요가수련 덕분이었다.
유산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임신 초기에 몸과 마음이 무척 불안했었다. 통증과 출혈을 동반한 증세는 나를 더욱 약하게 만들었고, 임신 3개월째에 급기야 병원에 입원해야만 했다. 충분히 안정을 취했다고 여겼지만, 퇴원 후 며칠 뒤에 다시 출혈 증상이 나타났으며 몸은 더할 수 없이 약해져만 갔다. 의사선생님은 무조건 휴식을 취할 것이며 이대로는 자연분만이 불가능하다고 단정했다. 자연분만이 아니어도 좋으니 제발 건강한 아기를 낳을 수 있다면야 하는 바람으로 다니던 직장에 휴직계를 내고 출산 때까지 몸 돌보는 일에 전념하기로 했다.
가을은 무르익어만 가고 새로 이사 온 우리 아파트 앞길은 온통 노란 은행잎으로 뒤덮이기 시작할 무렵, 마냥 집에서 쉬기만 하는 휴식이 건강의 완전한 조건일 수는 없겠다 생각되었다. 몸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 가벼운 요가동작은 집에서도 잠깐씩 할 수 있을 만큼 되었을 때, 마음을 먹고 홍익요가연구원에 문을 두드렸다.
수련하던 첫 날, 무척 힘들고 무겁게 느껴졌던 내 몸을 기억한다. 힘들다고 생각했던 내 약한 마음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선생님께서 내 건강상태를 점검해주셨는데, 몸의 균형도 많이 깨져 있고 신장과 방광, 자궁 쪽이 약해 이를 튼튼히 하는 음식을 많이 먹고 수련을 꾸준히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런 정도라면 아기 갖기도 힘든 약한 몸이었는데 이렇게 가졌고, 게다가 몸을 단련할 수 있는 좋은 기회까지 얻게 되었으니 오히려 뱃속의 아기를 효자러 여기라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그 말씀에 힘입어 출산일까지 넉 달 동안 열심히 수련에 정진하며 내 몸과 태아의 기운에 집중하고자 노력을 했고, 임신 8, 9개월 때에는 연구원에서 요가와 자연건강의 원리에 대해 깊이 있게 배울 수 있는 깨닫기주말학교 수업에도 나가 강의를 들으며 마음 수련에 더욱 열중했다.
특히 깨닫기주말학교의 수업은 내가 건강해야 아기를 비롯한 우리 가족 모두의 건강한 삶이 보장된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던 참으로 고마운 시간이었다.
수련으로 하루하루 몸과 마음의 준비를 다해가고 있던 10개월 째, 37주가 되어 정기진찰을 받으러 병원에 가니 자궁문이 1.5cm 열렸다고 했다. 분만실에 가서 초음파 검사, 진통 검사를 받고 집으로 돌아오니 출혈이 조금 있고 아랫배가 아파왔다. 몸은 힘들었지만 홍익요가연구원에 살살 걸어가서 수련을 했더니 오히려 몸이 가벼워짐을 느꼈다.
38주가 되니 자궁문이 더 열려 진통만 오면 바로 낳을 수 있겠다고 의사선생님은 말씀하셨지만 초조해 하지 않고 편안하게 진통을 기다리기로 했다. 조금씩 가진통이 스쳐 지나가기를 반복하다가 예정일을 사흘 앞둔 날, 아랫배와 엉덩이, 허리 등이 묵직하고 찌르듯이 아프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낮 동안에는 불규칙적이던 진통이 저녁 6시 이후부터 횟수가 많아졌고, 밤 11시부터는 거의 10분 간격으로 진통이 찾아왔다. 통증이 심하진 않아 이것이 진통인가 싶기도 했지만 병원갈 준비를 하고 자다깨다 하며 밤을 보냈다. 새벽 5시 이후부터 4~7분으로 간격이 줄어들기 시작하자 짐을 챙겨들고 남편과 함께 6시에 집을 나섰다. 병원에 도착하자 분만대기실 침대가 모두 찼으니 잠시 복도 의자에 앉아 기다리란다. 좀 심하다 싶었으면서도 한편으론 지금 내가 진통을 겪고 있는 게 맞긴 하나 의심이 들었다. 아프긴 했지만 그만큼 참을 만했다는 뜻이다. 복도 의자에 앉아만 있기 뭐 해서 슬슬 허리돌리기도 하고 고른호흡도 하는 등 홍익요가연구원의 임산부 요가선배들이 했다고 들었던 동작과 호흡을 하면서 기다렸다.
몇 분 후, 자리가 생겨 침대에 누우니 한 의사가 와서는 “이슬이 비치고 아프니까 불안해서 오신 거죠?” 한다. 그러면서 내 핸드폰 줄을 어디서 샀냐고 묻는 여유까지 부렸다. 그러나 내진을 하더니만 갑자기 표정이 바뀌며 오늘 낳겠으니 입원수속 밟으라고 한다. 자궁문이 6cm 열려 있다고 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의사와 간호사는 내 표정이 곧 분만할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아서 설마 했단다. 그때가 7시 정각이었다. 그러나 병원에 오니 긴장이 되어서였을까 오히려 진통이 더디게 오는 것이었다. 주치의 선생님의 지시로 촉진제를 조금씩 맞으니 드디어 본격적인 진통이 찾아왔다.
-1부 끝-
** 2부를 기다려 주세요~**
*김O해씨*- 중앙여중 교사. 힘든 임신 기간중에 깨닫기주말학교 제 23기를 수료하고 무사히 예쁜 딸아이를 순산했으며 지금은 다시 교단에 서 계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