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김포대교를 지나는 차안에서 아기는 여전히 발길질을 해대고 있었다. 분만예정일을 이틀 남기고 정기검사차 병원에 가는 길인데 언제 아기가 내려올지 한숨이 나올 뿐이었다. 그런데 진단을 하시던 의사 선생님이 깜짝 놀라며 “배가 많이 아팠겠는데요. 자궁문이 2cm정도 열렸어요. 촉진제라도 맞고 오늘안에 낳아야겠어요.”라며 당장 입원하라고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한사코 권하는 의사선생님께 3시간만 집에 가서 준비하고 오겠다고 말씀드린 후 병원에서 가까운 친정에 오자마자 연구원에 전화했다. 선생님께서는 차분하게 조언을 주셨다. “촉진제 맞고도 진통이 오지 않으면 자연분만이 힘들어질 수도 있으니 진통이 올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세요.” 약속했던 시간보다 느지막히 분만대기실에 들어갔다. 사방에서 산모들의 신음소리가 들리는데 정신이 말똥말똥한 상태로 누워있어서인지 왠지 오지 않을 데 온 기분, 내 자리가 아닌 기분이 드는 등 전혀 낯선 곳에 홀로 선 느낌이었다. 담당 선생님께 “진통이 전혀 없는데 내일 오면 안 되나요?”라고 묻자, 다음날 아침 6시에 오라하여 병원에서 나와 집에 와서 잠을 청했다. 다음날 새벽 6시, 번개가 치고 소나기가 오는데 남편이 어서 병원에 가잰다. 하지만 여전히 진통이 없어 병원이 아닌 친정으로 갔다. 친정부모님은 의사의 충고에 맞서는 행동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어서 병원으로 갈 것을 종용하셨고 의사이신 시아버님께서도 이미 자궁문이 열린 상태에서는 감염될 위험가능성이 있으니 어서 병원에 가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다시 연구원에 전화를 걸어 담담한 마음으로 기다리라는 선생님의 권고에 의지하고 있었다. 집을 나와 병원으로 가는 길에 큰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산전과 산후에 행할 바를 상세히 말씀해 주시며 내게 격려와 용기를 주셨다. 오전 10시 분만실에 들어가면서부터 조금씩 진통이 왔다. 큰선생님 말씀대로 고양이 자세를 하려고 했으나 이미 태아의 심박동을 체크한다고 무거운 벨트를 허리에 두르고 팔에는 뭔지 모를 링거액을 꽂고 있어 “누운 골반펴기자세”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분만대기실 공기는 차갑고 입고 있는 가운은 형식적이고 추워서 이불 좀 달라고 하였으나 얇은 홑이불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담당간호사가 와서 진행속도가 빠르고 출산교육을 잘 받은 산모라 12시쯤에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전날 잠을 설친 나는 따스한 솜이불과 잠이 더 필요했다. 그 후로는 “선생님 저 좀 잘께요. 잠시 놔둬주세요. 벨트 좀 풀어 주시면 안돼요?”라는 소리만 연발했던 것 같다. 그리고 심하게 통증이 밀려올 때마다 ‘수련 좀 더 열심히 할 걸…’하며 후회했다. 진통이 연속적으로 밀려오자 숨을 가다듬고 양쪽 다리를 잡아올려 “바람빼기자세”를 하였다. 폭풍의 눈 속에 있는 기분…. “바람빼기자세”로 깊이 숨을 몰아 쉴 때는 통증이 거의 안 느껴졌다. 얼마의 시간이 어슴프레 흐른 뒤, 우렁찬 아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영화나 책에서 본 것처럼 탯줄을 달고 내 옆에 뉘어지는 것이 아니고 누에고치처럼 천에 돌돌 말려서 조그만 얼굴만 옆으로 보였다. 신생아답지않게 하얗고 오목조목한 얼굴이 빛으로 내 눈에 쏘였다.
수련시간에 사바아사나(완전휴식 자세)가 시작될 때 온 몸을 이완시켜 누우면 콩닥콩닥 아기의 심장이 힘차게 뛰는 소리가 느껴졌다면 누가 믿을까. 하지만 상상이든 착각이든 가끔 수련에 몰입한 후 사바아사나가 시작될 때는 어디선가 아련한 심박동 소리가 들리곤 했다. 분명히 내 심장소리는 아니고…. 이는 아마 아기가 나의 움직임으로 인해 신선한 공기를 많이 들이마신 듯 행복해하는 느낌일 것이다. 스스로 ‘태내로 맑은 기운이 많이 들어와서 아기도 좋은가 보다’라고 나름대로 상상하며 나의 수련에 만족해했다.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연구원까지의 거리가 멀어서 자주 다니지 못했고 특히 유난히도 더웠던 작년 여름에는 만삭의 몸으로 꾀도 생겼다. 그래도 홍익요가연구원과 인연을 맺지 않았다면 서른 다섯이라는 늦은 나이에 이처럼 아기가 생기기 어려웠을 것이라 생각했으므로, 그리고 요가를 해야만 건강하고 아름답게 아기가 태어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으므로 요가와의 그 끈을 놓지 않았던 것 같다.
“여성에게 있어서 임신과 출산은 몸과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삶의 전환점이자…” 3시 임산부 수련시간의 큰선생님 말씀은 지금도 들을 때마다 마음에 깊이 들어온다. 내 몸 속의 아기도 마찬가지이다. 늦은 나이에 아이를 가졌지만 4년전 형편없는 몸과 마음을 이끌고 연구원 문을 두드렸을 때부터 지속된 믿음으로 임신기간동안 아기와 함께 수련을 하는 것만이 내가 할 일의 전부이며 그래야 아기도 행복할 것 같았다. 실제로 어떤 핑계를 대서 조금이라도 나태해지고 수련을 게을리하면 몸과 마음의 안정이 깨지고 아기도 불안한지 심하게 요동을 쳤다. 집이 먼 관계로 연구원에 갈 때는 일부러 조금 일찍 가서 수련준비를 하고 본수련이 끝나고는 혼자 남아서 수련을 더 하였다. 호흡수련을 할 때 들숨날숨마다 ‘주님과 함께, 엄마와 함께, 사랑하는 우리 똘이와 함께’를 마음속으로 노래부르면 아기도 같이 노래부르는 것 같았다. 엄마와 함께 수련을 하면서 힘든 기간을 잘 넘긴 것은 물론이고 출산당일까지 발길질을 신나게 해서 주변을 당황케 한 우리 똘이는 지금도 틈만나면 한시간씩 발길질을 해대고 생후 3주만에 뒤집기도 하고 한달이 채 못되어 목을 꼿꼿이 가누는 등 활발한 성장을 보이면서 단단하고 건강하게 그리고 밝게 잘 자라고 있다. 어디서 이런 아이가 나왔냐는 주변의 말처럼 엄마의 연약한 체질은 닮지 않아 기쁘다. 내 삶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시간을 갖게 해 준 우리 아기…. 주님이 보내 주신 은빛날개를 단 귀엽고 예쁜 천사! 임신 중에 했던 수련과정은 갈팡질팡하는 내 마음에 평안과 안정이라는 중심을 주었으며, 나이 많은 초산부에게서 갈등과 불안감을 제거해주고 그 시간을 감사가 가득한 시간으로 바꾸어 주었다. 그리고 태아에게도 엄마를 신뢰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였다. 잘 웃고 활기찬 우리 아기를 보고 양가 부모님이 흐뭇해하실 때마다 남편은 “얘가 요가를 했잖아요.”하며 한껏 뻐긴다.
요즘도 나는 기회가 닿을 때마다 똘이를 집에 두고 연구원으로 향한다. 어린 아기를 두고 나오는 것이 한편으론 마음 아프고 노산으로 인한 더딘 산후회복과 육아로 힘이 들지만 이는 아마 내가 요가의 끈을 꼭 움켜쥐는 것이 진실로 아기를 사랑하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항상 연구원 가족들의 한결같은 보살핌과 헌신에 놀라고 있지만, 똘이의 탄생과 함께 임산부 요가라는 엄청난 프로그램을 수행하고 계시는 연구원의 선생님들께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하고 싶다.
*황O미님: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하고 패션디자이너로 일하다가 지친 심신을 추스리기 위해 요가를 시작했다. 요가와 건강의 원리를 공부하며 아기도 자연의 순리대로 키우기 위해 애쓰는 새내기 엄마이다. 똘이는 아들 성준이의 애칭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