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임신
결혼 3년 째, 더 이상 시간이 지나기 전에 임신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다행히 빨리 임신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입덧이 너무 심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지요. 임신 5개월이 되던 작년 9월 초, 입덧도 잠잠해져서 임산부요가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임신 전 꾸준히 요가를 했지만, 임산부요가는 처음이었어요. 입덧으로 많이 지친 몸과 저의 약한 체질 때문인지 뱃속의 아기도 좀 약한 편이었습니다. 남양주에서 신촌까지 수련하러 다니는 것이 사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가만히 집에서 있는 것보다는 쉬엄쉬엄 요가를 하는 것이 훨씬 낫겠다는 생각을 해서였지요. 건강이란 혼자의 몸보다는 임신을 한 상태에서 더욱 드러나는 것인가 봅니다. 홑몸일 때에는 건강한 편은 아니어도 그냥저냥 지낼 정도였지만, 임신을 하니 이곳저곳 부담이 가는 것이 저절로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요가원의 선생님께서 알려주신 자연생식과 제 몸을 보충해주는 음식을 먹으려고 부단히 노력하며, 허리돌리기와 팔돌리기도 열심히 하면서 저의 건강과 뱃속의 아기를 위해서 꾸준히 수련을 하였습니다. 또한 큰 선생님의 명상특강을 통한 옴만트라와 수련시간에 배운 음양호흡, 교호호흡을 자기 전 정말 열심히 하려고 하였지요. “자네의 만트라가 집안에 행복의 기운을 불어넣어 준다네.” 자기 전 5분 동안 앉아서 차분히 아기에게 집중하며 옴만트라를 하면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기도 엄마와 함께 하나가 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뱃속의 아기를 위해서 다녔던 <깨닫기열린학교>와 <요가지도자과정>도 잊지 못하겠네요. 건강에 대한 소중함과 앞으로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는 지를 아기와 함께 공부했으니 그것이 더욱 훌륭한 태교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오가며 왕복 4시간을 걸려 임산부요가를 다녀서인지 체중도 많이 불지 않았고, 주위에서 몸이 가볍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은, 행복한 임산부였습니다. 출산예정일을 앞두고는 발목돌리기와 골반펴기, 박쥐자세 등을 위주로 하며 아기와 만날 준비를 하였습니다. 출산예정일을 일주일 앞두고도 아기가 내려올 생각을 안했는데, 아기와 만나고 싶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나니 신기하게도 아기가 점점 밑으로 내려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출산예정일
그날은 왠지 마음이 정말 차분했습니다. 아기의 물건도 다 준비해놓았죠. 점심부터 허리가 조금씩 아파왔습니다. 이상하다 싶어 허리돌리기를 하고, 발목돌리기 등을 열심히 하는 데 저녁때는 허리가 점점 더 아파오더군요. 평소보다 저녁을 좀 일찍 먹고 나니, 차분히 뱃속의 아기와 명상을 하고 싶더군요. 한 시간을 넘게 아기와 이런저런 생각을 나누고 옴만트라와 호흡을 평소보다 오래 했습니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새벽 1시, 배가 심하게 당기면서 뱃속에서 무언가 터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말로만 들었던 양수가 터진 것이었지요. 덜덜 떨리는 몸을 호흡을 하며 진정시키고, 신랑과 함께 미리 준비해놓았던 짐과 ⌜쉬운요가 편안한 임신⌟책을 챙겨들고 병원으로 바로 향했습니다.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가면서 머릿속에는 큰 선생님의 “미리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서 걱정하지마라.”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오히려 이제 아기와 만날 수 있겠구나 생각하며 “기쁨아(태명), 엄마아빠와 이제 곧 만날 수 있겠구나. 조금만 기다리자.”하면서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다행히 분만실은 저 이외에는 산모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토요일 새벽 3시. 한가로운 분만실 에서 간호사 언니들은 차분하게 저를 배려해주었습니다. 새벽 4시, 가족분만실로 병실을 옮겼으나 아직 진통은 오지 않고 있었습니다. 새벽 5시, 관장을 하고, 신랑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여유로운 산모였습니다. 오전 7시, 조금씩 진통이 오고, 6분 간격이긴 했지만 감염의 우려가 있으니 자궁촉진제를 쓰자고 하더군요. 9시에 진통제를 맞았는데 진통이 점점 심하게 오더군요. 10시가 넘자 진통은 3분 간격에서 점점 짧아지고 있었고, 강도도 세져 갔습니다. 진통이 올 때마다 제가 생각한 것은 “엄마가 아픈 것보다 뱃속의 아기는 백 배 더 힘들고 아프다.”는 선생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소리를 지르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지만, 뱃속의 아기에게 엄마의 비명소리를 들려주고 싶지 않아 그야말로 입을 앙다물고 베개를 쥐어짜면서 호흡에 집중하며 진통을 참았답니다. 제 옆에서 신랑은 제가 호흡과 옴만트라를 할 수 있도록 힘을 북돋아주었습니다. 간호사 언니들도 이렇게 잘 참는 산모는 처음 봤다며 칭찬을 해주었지요. 11시30분 쯤 자궁문이 3cm 열렸고, 오후에는 아기를 낳을 것 같다며 담당 의사선생님께서 말씀하시더군요. 12시 30분쯤 되었을까? 자궁문이 9cm 열렸다며 의사선생님의 내진강도가 틀려지더군요. 진통은 그야말로 파도처럼 밀려오는데 바람빼기 자세를 시키며 힘을 주라고 했습니다. 너무 갑작스럽게 빨라지는 경과에 저도 놀랐지만 ‘이제 거의 시간이 되었구나.’ 생각하며 힘주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분만준비를 하며 본격적으로 힘을 주라고 하더군요. 그 때 들었던 생각은 ‘한 번에 끝내기’였습니다. ‘나도 힘들지만 좁은 산도에 끼어있는 우리 기쁨이는 더 힘들거야. 젖 먹던 힘까지 내서 한 번에 끝내자’ 배가 뒤틀리는 고통 속에서 정말 젖 먹던 힘까지 내서 힘을 주자 “힘 빼세요, 힘 빼세요”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몸은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머릿속의 의식을 끝까지 놓지 않고 아기에게 집중했던 덕분이었을까 13시 1분에 사랑스러운 기쁨이가 태어났습니다. 신랑에게 들은 여담이지만 담당 의사선생님은 초산부니 11시 30분에 3cm 열렸으면 넉넉하게 오후에 낳을 거라 생각하며 약속이 있어 나가셨다 제 경과가 너무 빨라 약속도 취소하고 병원으로 다시 오셨다고 합니다. ^^ 진짜 진통을 한 것은 3시간이 조금 안되니, 초산부치고는 정말 순산한 것이지요. 이 모든 것이 임산부요가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제가 요가를 하면서 큰 선생님의 “요가를 하며 자네와 뱃속의 아기가 점점 건강해진다는 믿음을 가지게.”,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서 미리 걱정하지 말게.”, “뱃속의 아기에게 집중하게.”라는 말씀들은 임신기간 내내 마음속에 담겨 있었습니다. 또한 항상 따뜻하게 미소 지으며 먼 곳에서 다닌다고 격려해주셨던 홍익요가연구원 선생님들의 격려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한 달이 지나고
엄마의 뱃속에서 요가를 한 덕분인지 기쁨이는 기저귀를 갈 때마다 다리를 펴는 쭉쭉이를 하며 엄마의 편안한 숨소리를 들으며 잠들고, 방긋방긋 웃는 아주 건강한 아이입니다. 임산부요가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나와 내 아기가 건강해질 것이라는 믿음, 순산할 것이라는 믿음, 앞으로도 건강할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두 몸이 함께하는 믿음의 요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한 달이 지난 지금 이제 다시 집에서 산후요가를 시작하며 기쁨이와 함께 요가 할 날을 기다리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답니다.
김O영 님: 남양주 집에서부터 신촌까지 전철을 세 번 이상 갈아타며 지극 정성으로 수련하신 모범회원이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