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남자(?)가 잠든 이 밤 살며시 일어나 평범하지 않았던 둘째 아이의 임신기를 적어본다. 첫째 아이를 출산한 지 벌써 6년이 지났다. 나의 건강 문제로 둘째를 임신하는 문제는 시댁에서도 친정에서도 적극적으로 권하지 않았다. 심지어 남편까지도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고 했다. 그러나 형제자매가 많은 나와 비교해 남편은 외롭게 보일 때가 가끔 있었고 험난한 세상 살아가는데 서로 의지할 수 있는 힘이 피붙이만한 것이 없다는 생각에 남편을 계속 설득하여 둘째를 임신하게 되었다.
첫째 아이를 가졌을 때에는 여러 가지로 건강이 별로 좋지 않은 상태여서 가까운 임산부 체조교실을 찾아가 운동을 했다. 하지만 어떤 동작이나 기술만 배우는 것으로 약간의 몸의 변화는 있었지만 몸과 마음의 안정에 그다지 큰 도움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저 정도면 체육을 전공한 내가 가르치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체조 내용은 단지 그 결과에만 중점을 두고 출산을 잘 하기 위해서는 동작을 이렇게 저렇게 해서 연습하고 익히고, 분만 시에는 호흡을 이렇게 하고… 하는 식이었다. 첫째 아이의 임신과 출산을 힘들게 보내면서 나는 나의 건강은 물론이고 어떻게 하면 임산부들이 건강하고 편안하게 임신기간을 잘 보내고 출산을 쉽게 하게 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은 내 마음 속의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 있었다. 그렇게 몸이 약해진 상태에서 대학에서 강의와 직장 생활, 육아에 정신없이 끌려 다니다보니 몸과 마음은 극도로 쇠약해져 갔다. 그래서 내 건강의 문제와 마음속의 숙제를 해결해야겠다는 결심으로 홍익요가연구원을 찾게 된 것이다. 연구원에서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면서 몸과 마음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들여다보게 되었고 풀리지 않는 숙제에 대한 해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동안의 내 몸과 마음을 망쳐온 그릇된 습관을 버리기 위해 나는 주위의 우려와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요가에 입문하기로 결정했다. 연구원에서 지도자 과정을 마치고 임산부 요가를 전문으로 지도하면서 더불어 아이 하나로 끝냈을 가족계획을 변경해 둘째를 가지게 된 것이다.
하나. “임신은 혼돈이다.” 스승님의 말씀이다. 이물질이 있는 듯 불편하고 거북한 느낌과 몸 밖의 변화에 임산부들은 임신기간 내내 몸과 마음을 편안한 상태로 계속 유지하기가 힘들다. 지나가는 임산부들의 표정을 보라. 이 시대의 임산부들은 이러한 안과 밖의 혼돈에 대처할 능력이 전혀 없어 보인다. 나 또한 첫째 아이 때는 심한 입덧으로 인해 병원에 입원하여 링거주사를 맞을 정도로 힘든 임신 기간을 보냈다. 그러나 둘째 아이는 비교적 짧은 입덧 기간을 거치고 임산부 요가 수련을 하면서 건강한 출산을 맞을 수 있었다.
둘. 하늘이 내린 기회! 스승님의 배려로 임신 중에 다른 임산부의 수련을 지도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을 갖게 되었다. 임산부 요가에 관한 공부를 몸소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점점 불러가는 배를 안고 임산부 수련을 지도하면서 그들과 한 호흡이 되어 무더운 여름을 났다. (영광스럽게도 뱃속의 아기는 태어나기도 전에 요가 선생님이 된 것이다!) 요가 자세는 단지 동작의 기술만 익히는 것이 아니라 자세를 유지하면서 들숨과 날숨의 호흡의 균형을 찾아내는 것이다. 또 그 길고 편안한 호흡 속에서 의식을 모아 태아와 교감할 수 있는 명상 상태를 이끌어낼 수 있다. 혹한의 겨울을 이기고 새봄에 싹을 틔우듯 몸과 마음의 혼돈 중에도 아기는 하나의 순수함의 존재로써 천천히 질서정연하게 자리 잡아 가고 있는 것이다.
셋. 쉬운 출산? 회원들이 가끔 묻는다. 좀더 쉽게 아기를 낳을 수 있는 방법이 있겠느냐고. 그렇다면 수중분만이나 그네분만 등과 같은 색다른 방식을 택하면 출산이 쉬워진다는 말인가? 물론 그러한 방법들은 육체적 고통을 일시적으로 줄여 줄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모든 출산에는 고통이 따르는 것이므로 쉬운 출산이란 있을 수 없다. 다만 출산의 순간 고통에 눌려 허우적댈 것인가 아니면 그 고통을 맑은 정신을 가지고 아기의 탄생이라는 숭고한 결과에 이르는 하나의 과정으로 느낄 것인가가 더 중요한 일일 것이다. 아무리 자세를 똑바로 하고 호흡수련을 열심히 한다고 해도 출산의 고통을 생명의 탄생에 당연히 필요한 것으로 인식하는 것, 이 열 달이라는 기간 동안 자신과 아기를 위해 몸과 마음의 최선과 정성을 다 한다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넷. 출산 한주의 요가 수련을 마무리하고 아들과 함께 조용한 토요일을 보내고 있었다. 서서히 출산의 징후가 보이고 진통이 조금씩 규칙적으로 심해져 갔다. 큰 아들 녀석이 평소와 다른 엄마의 모습에 약간은 겁을 먹은 모습이었다. 조용히 아들을 앉혀 놓고 웃으면서 물었다. “승준아, 이제 조금만 있으면 우리가 기다리던 동생을 볼 수 있게 되었구나. 승준이가 엄마 옆에서 힘이 되어줄 수 있겠니?”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때마침 출근했던 남편이 급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 당장 출발하자는 남편을 진정시키고 천천히 호흡과 함께 긴장되는 근육을 풀어 나가기 시작했다. 진통은 3분 간격으로 찾아 왔다. 경산인 경우에는 조금 더 서둘러야 되지만 큰 아이 때 너무 일찍 가서 산만한 분만대기실에서 고생했던 경험 때문에 1분 1초라도 집에서 편안하게 진통을 이겨내고 싶었다. 또 악악거리는 소리를 태아에게 들려주느니 엄마의 옴() 만트라를 들려주고 싶었다. 3분 간격의 진통이 어느 정도 진행되더니 간격이 더 짧아지고 더욱 강하게 오기 시작했다. 집을 대충 정리해놓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예상했던 대로 링거액, 심박동기 등을 몸에다 찌르고 달면서…. 조용한 출산은 기대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호흡에 집중했고, 서서 천천히 걷고 허리 돌리는 모습을 본 간호사들은 나에게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다 드디어 뭔가 묵직한 것이 골반 아래로 꽉 끼어 들어가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시간을 재고 있던 남편은 간호사들에게 와 달라고 얘기했고 간호사들은 화들짝 놀라 이동 침대를 가져왔다. 간호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걸어서 들어가겠다고 말하고 걷기 시작했다. 진통은 일분 간격으로 강력하게 왔고 걷다가 진통이 오면 벽을 잡고 서서 호흡에 집중하였다. 한마디 신음소리 없이 호흡을 고르며 서 있는 나에게 간호사 한 명이 “산모님, 지금 진통을 하고 있는 건가요?”라고 물었다. 아, 바로 이것이 요가의 힘인가! 첫째아이출산 때와는 너무도 달라진 내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분만대에 오른 나는 문밖에서 머뭇거리는 남편을 불렀다. 아기의 탯줄을 직접 자르기로 하구선 막상 그 분위기에 위축되어 망설이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결심이 선 듯 이내 들어와 내 손을 힘주어 꼭 잡아 주었다. 작년 이맘때쯤 막내 여동생이 힘들게 출산하는 모습을 옆에서 빠짐없이 지켜본 나로서는 아직도 그 광경이 눈앞에 선하다. 아기가 나오려는 마지막 순간, 엄마의 짧은 호흡과 약한 의지력 때문에 아기는 그 좁은 산도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꽉 끼어 있었다. 태어날 때 아기의 고통은 엄마의 고통의 10배가 넘는다고 한다. 아기에게 그 고통의 시간을 단 1초라도 계속 유지시킬 수는 없었다. 그 순간 힘은 저절로 주어졌고 마지막 힘주기라는 각오로 뱃속의 아기와 나는 혼연일체가 되어 깊은 호흡과 함께 의식을 아래로 모았다. “아기의 머리가 보이기 시작해요”라는 말이 들리면서 함께 따뜻한 그 무엇이 울컥 쏟아져 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고추네요. 그놈 참 잘 생겼네!’라는 인사와 함께 잠시 아기를 안겨주었다. 그 따듯한 온기와 행복감은 출산으로 지친 나의 몸과 마음을 채우기에 충분했다. 7-8분 뒤 태반이 나왔으니 병원에 도착한 지 1시간 30분 만에 순산을 한 셈이다.
다섯. 산후 요가베이비 남형 이는 3.4kg으로 해맑은 동자의 모습이다. 집안일과 육아로 지친 엄마에게 끊임없이 미소를 보내주는 순둥이며, 옴 만트라에 조용히 잠들고 아기생식(生食)도 꾸준히 먹으면서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임산부 수련은 단지 출산을 쉽게 하는 동작과 호흡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출산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몸을 이해하고 정신을 맑게 하고, 스스로 몸을 통제하고 조절하면서 출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