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부터 매미 울음소리가 대단한 걸 보니 오늘도 무더위가 여전할 것 같다. 8월도 벌써 반이나 훌쩍 지나갔지만 더위의 기세는 수그러들 줄 모르고 조금만 움직여도 온몸이 땀으로 끈적거린다. 아기라 그런지 원래 열이 많은 체질인지 우리 승민이는 젖을 먹을 때도, 뒤집을 때도, 앙앙 울 때도, 신나게 옹알이를 할 때도 온몸에 땀이 흥건하다. 정신없이 분만실로 실려 갈 때가 엊그제 같은 데 벌써 넉 달이 훌쩍 지났다. 작년 이맘때 입덧으로 고생하던 때가 거짓말인 것처럼 여겨진다. 그때만 해도 이런 날이 정말 올까 싶었는데….
나는 결혼을 무척 늦게 했다. 높아진 초혼 연령을 감안하더라도 나와 남편은 결혼이 무척 늦었다. 우리는 연애 기간도 짧고 만혼이라 아이를 갖는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 나이에 아이가 쉽게 생길 것 같지 않으니 둘이서 알콩달콩 잘 살자, 뭐 이런 생각이었다. 하지만 인생이란 것이 어디 마음먹은 대로 되던가…. 아이가 덜컥 생긴 것이다. 처음 그 사실을 확인했을 때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았다. 머릿속으로 내 인생은 끝났구나, 아이를 무서워서 어떻게 낳나, 아이는 어떻게 키우나, 살이 많이 찌면 어쩌지 등등 온갖 생각이 획획 스쳐 지나갔다. 양가 어른들도 친구들도 그 나이에 얼마나 복이냐며 축하해 주었지만 정작 나는 준비되지 않은 임신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노산이라 아이의 건강도 너무나 걱정스러웠다.
임신이라는 일생일대의 사건에 얼떨떨해 있던 중에 무더위와 함께 입덧이 시작되었다. 남들은 입덧이 너무 심해 살이 쪽쪽 빠졌다던데, 나는 몸이 퉁퉁 붓기 시작했다. 물만 마셔도 붓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입덧이 끝날 무렵 붓기는 그대로 살이 되고 말았다. 다행히 급격한 체중 증가에도 당뇨나 혈압 문제는 없었지만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다리가 퉁퉁 부어오르는 통에 여간 고생이 아니었다. 이러다가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터지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 무렵 나는 분만을 위해 병원을 옮기게 되었다. 임신을 확인하러 갔다가 계속 다니게 된 병원은 분만은 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했다. 새로 옮긴 병원은 임신부들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 중에 임신부 요가가 있었다. 하지만 강습은 일주일에 하루밖에 하지 않아 도대체 무슨 효과가 있을까 의심스러웠다. 좀 더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임신부 요가를 하는 곳이 없을까 찾던 차에 나는 홍익요가를 알게 되었다. 사실 홍익요가는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아니 신촌 어딘가에 홍익요가라는 곳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일 관계로 신촌을 자주 가는데 오며가며 홍익요가를 보았던 것이다.
나는 임신 6개월이라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홍익요가를 찾아 당장 3개월 코스를 끊었다. 요가를 시작하면서 내가 바란 것은 체중증가 속도를 늦추는 것 하나뿐이었다. 그때 당시 체중은 이미 10킬로그램이 훨씬 넘게 불어 있었다. 출산까지 4개월이나 남은 데다 본격적으로 아이가 클 때라 무엇보다 체중증가 속도를 늦추는 것이 급선무였다. 안 그러면 출산 때까지 30킬로그램이 넘게 불 것 같았다.
요가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그리 큰 동작도 현란한(?) 동작도 없었다. 오히려 맥이 빠질 정도로 시시했다. 도대체 이런 스트레칭이 무슨 도움이 될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정신을 집중하고 열심히 동작을 따라하다 보면 어느새 몸이 개운하고 가벼워지는 것이 아닌가? 직업상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야 하는데, 요가를 시작한 후로는 저녁이 되어도 다리가 붓지 않고 어깨도 많이 아프지 않았다. 무엇보다 체중이 느는 속도도 확 떨어졌다. 그렇다고 내가 밥을 안 먹거나 아이가 크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밥도 잘 먹고 아이도 쑥쑥 크는데 몸무게는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 게다가 체력도 좋아져서 막달까지도 쌩쌩해 모두들 노산인 산모가 너무 건강하다며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정신적으로도 무척 안정이 되는 것 같았다. 출산을 앞두고 막연한 불안감과 우울한 기분으로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라는 선생님들의 충고와 만트라(mantra) 수행을 하면서 심리적으로도 많이 안정이 되었다. 특히 선배 요가맘들의 출산 후기를 읽으며 마인드 컨트롤을 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십인십색의 출산후기였지만 기본은 하나였다. 요가를 열심히 하고 배운 호흡만 잘 기억하면 누구나 자연분만을 할 수 있다는 것 말이다.
그렇게 요가를 시작한지 4개월이 지났고 출산 예정일이 다가왔다. 요가를 한 덕분인지 아이는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첫 애라 그런지 예정일이 일주일이 지나도 아이는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초음파 상 몸무게는 3.5킬로그램에 육박했다. 의사 선생님은 더 이상 시간이 흐르면 양수가 줄어 아이도 위험하고 산모도 힘이 드니 유도분만을 하자고 말씀하셨다. 월요일 새벽으로 유도분만을 예약했지만 마음은 너무 착잡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도분만을 한 산모가 이틀이나 죽도록 산통을 하고 결국 수술을 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연분만을 하기 위해 열심히 요가를 했는데 고생만 하다가 수술을 하게 되면 어쩌나 싶었다.
그런 엄마의 고민을 승민이가 알았는지 기특하게도 금요일 밤부터 아이는 나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밤부터 살살 아프던 배는 토요일 아침이 되자 급격하게 아파오기 시작했다. 나와 신랑은 아침 일찍 병원을 찾았지만 아직은 멀었다는 소리를 듣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다른 사람들의 경험담을 읽으며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했지만 배가 아파오니 무조건 병원에 가서 빨리 낳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남편은 시계를 들고 내 옆에서 진통 간격을 재었고 마침내 5분 간격으로 진통이 오자 우리는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간호사 선생님은 아직도 멀었다고 하셨다. 배는 아파 죽겠는데 다시 집으로 갈 생각을 하니 눈앞이 노래지는 것 같아 나는 그냥 입원을 했다. 어차피 오늘 내일 나올 테니 말이다.
나는 다른 선배 엄마들처럼 허리 돌리기도 하고 골반을 여는데 도움이 되는 요가 자세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슬이 나온 후로 계속 하혈을 했는데, 간호사는 아무 문제도 없다고 안심하라고 했지만 내게는 그것이 무엇보다 큰 문제였다.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 하니 어떻게 요가 자세를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안 되겠다 싶어 특강 내용을 정리한 수첩을 펼쳐 들고 마인드 컨트롤을 시작했다. 머릿속에 여러 자세를 그려보고 만트라를 하고 호흡을 했다. 시간은 어느새 일요일 새벽을 향하고 있었다. 느리지만 조금씩 진통 간격이 짧아지고 진통의 강도도 심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때가 되었다는 예감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진통의 고통은 극심했다.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땀이 비 오듯 흐르기 시작했다. 만트라고 호흡이고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오로지 어서 낳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내진을 한 간호사는 자궁이 7센티미터까지 열렸다며 이제 힘을 주라고 했지만 나는 너무 아파 제정신이 아니었다. 호흡을 하려고 해도 숨이 가빠 제대로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내가 비명을 지르면 아기가 나오면서 겁에 질릴까 아파도 소리도 못 내고 몸만 벌벌 떨 뿐이었다.
그러자 간호사가 아이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걸려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이 퍼뜩 들었다. 내가 이렇게 못나게 굴면 굴수록 내 아이가 더 힘들어진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간호사의 지시에 맞춰 힘을 주었다. 간호사는 내게 모로 누워 한쪽 다리를 배 앞으로 구부린 채 힘을 줘 보라고 했다. 마치 바람빼기 동작을 모로 누워서 하는 것 같았다. 그제야 선생님들이 해 주신 말씀이 떠오르면서 용기가 불끈 솟았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바람빼기 동작이라면 자신 있다는 생각 말고는. 나는 최대한 호흡을 길게 하며 내쉬는 숨에 맞춰 힘을 주었다. 그렇게 용을 쓴 보람이 있는지 30분 만에 분만 대기실에서 분만실로 옮겨졌다. 분만실에서는 본격적인 바람빼기 자세에 들어갔다. 나는 죽을힘을 다해 힘을 주었다.
그런데 누군가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안 되겠어. 이렇게는 안 돼.” 지금도 그 소리가 환청인지 아니면 실제인지 모른다. 신랑도 그 당시에 제정신이 아니어서 그런 말을 들은 기억이 없다고 하니 사실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순간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이렇게 주저앉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죽을힘을 다해 힘을 주었고 그 순간 뭔가가 쑥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마침내 아이가 태어난 것이다. 분만실로 들어온 지 15분 만이었다. 아이는 3.15킬로그램의 건강한 사내아이였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산모가 마흔이 다 된 노산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아이가 건강하고 말끔하다며 의사 선생님이 놀라셨다고 한다. 내 생각에는 요가 수행을 열심히 한 덕분인 것 같다.
세상에 갓 나온 승민이를 처음으로 품에 안고 처음으로 젖을 물린 지 벌써 넉 달이 지났다. 병원을 퇴원할 때 고작 2.9킬로그램이던 아이는 벌써 7킬로그램을 훌쩍 넘겼다. 꼼짝 않고 잠만 자던 아이는 뒤집기 신공을 익혀 쉴 새 없이 몸을 뒤집는다. 요즘 승민이와 나는 일주일에 세 번(은 꼭 나가고 싶다.. |